작성일 : 14-10-20 10:23
빠른 도로, 바른 도로 (제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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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도로의 시대적 소명
 
흔히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로서 고속도로 등 빠른 도로의 시대적 소명에 대해서는 그 기여와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빠른 도로의 공급이 이루어진 1970년부터 현재(2011년 기준)에 이르기까지 인구(1.6배), 자동차보유대수(146배), 국내총생산(144배), 고속도로연장(7.1배) 등 사회경제지표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있었다. 이러한 고도의 압축성장을 지원하는 기반시설로서 빠른 도로가 우리에게 제공한 유무형의 혜택은 실로 막대하다 하겠다. 약 4,000km 이상의 고속도로 스톡을 보유하게 되었고 지역간 평균통행시간 및 통행시간편차는 50% 이상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국토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제고하였으며 고속도로IC로부터 30분 이내 시간거리에 해당되는 서비스영역은 1970년 14% 수준에서 2010년 63.4% 수준으로 4.5배 이상 증가하였다(국토연구원, 2013). 지난 40여년간 고속도로망 구축에 따른 경제적 가치는 연간 119.7조원 수준(국토연구원, 2013)이며 사람들이 인지하는 심리적 거리감 개선효과도 63.8%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국토연구원, 2012) 등 빠른 도로는 그 역할과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뉴노멀 시대의 도로의 역할
 
그러나 빠른 도로의 비약적 발전과 성과에만 안주하기에는 향후 사회경제적 여건변화 등 새로운 시대 여건하에서는 이러한 투자성과가 그대로 재현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하고 있다. OECD의 우리나라 장기 잠재성장률 전망치가 약 1.8%대로(2016-2025) 예상되는 등 이른 바 구조적 저성장안정기의 경제체제로 진입하는 양상이다. 저출산·고령화로 대변되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통행수요의 예측치 전망, 향후 건설될 예정노선의 타당성 측면 등 새로운 기준과 관점에서의 도로정책, 즉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도로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동성 중심의 빠른 도로가 기능적·양적 성장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는지,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수준에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지향의 도로정책이 모색되어야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도로의 뉴노멀 정책으로 ‘바른 도로’ 개념을 주창하면 어떨까?
 
 
◈ 가치 지향의 바른 도로
 
‘바르다’라는 개념이 하나의 정형화된 틀로 규정하기에는 매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바른 도로가 지향해야 될 몇 가지 가치를 언급함으로 바른 도로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신뢰할만한 도로(Reliable Road)이다. 도로의 구조적 항상성과 일관성이 유지되며, 도로혼잡 등 도로이용의 변동성이 최소화되는 도로이다. 싱크홀 및 도로의 노후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는 요즈음, 도로의 구조적 일관성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건설 및 이용에 있어 언제나 유사한 수준의 신뢰성이 담보되는 도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도로의 유지관리 및 이용효율화를 위한 운영 등에 대한 투자전환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너그러운 도로(Forgiving Road)이다. 도로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한해 5,000여명에 이르는 등 우리나라의 교통안전수준은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볼때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사실 도로교통사고는 인적, 차량, 도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발생되며 이중 인적요인이 가장 큰 요인(AASHTO, 2010)으로 지목되고 있어 도로환경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로 이용자의 예기치 않은 단 한번의 실수도 너그럽게 수용하여 그 위험도를 경감시키는 도로를 제공한다면 이러한 도로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운전자의 기대(Driver’s Expectancy)에 어긋나는 도로환경을 최소화하고 기존 안전을 위한 각종 시설물이 오히려 안전을 저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Unsafe is Safe). 더 이상 도로가 비극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셋째, 공정한 도로(Equitable Road)이다. 의사결정의 대부분이 효율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형평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적정한 균형점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균형점의 위치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매우 투명하고 공정하며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도로정책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화에 긍정적 영향을 주어 도로투자 당위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다.
 
넷째, 감당할만한 도로(Affordable Road)이다. 도로는 대규모 투자재원이 필요하며 환경적으로 비가역적인 고정자산으로 도로투자의 부담이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세대간·계층간 수용성, 환경적인 지속가능성 등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가 감당할만한 도로서비스 수준을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이동성이 보장되는 도로서비스 수준이 얼마인지에 대한 사회 공통의 기준, 즉 도로의 최저서비스기준(National Minimum Standard) 정립 등이 이러한 고민의 한 예시가 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도로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현 세대 또는 전 계층이 저렴하게 이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그 부담을 과도하게 회피하려는 시도는 결국 미래 세대나 다른 계층에 그 부담을 이연·전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적정한 분담수준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 바른 도로를 위한 평가체계
 
앞서 언급한 가치들이 바른 도로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으며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관점에 따라 새롭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책으로 구현되고 투자결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타당성평가체계가 중요하다. 현재의 평가체계는 투입되는 비용과 발생가능한 편익의 정도를 상호비교하는 ‘효율성ʼ 중심의 평가체계로 대표적 평가지표가 비용편익비(B/C)다. 이중 편익효과의 대부분이 교통수요분석을 통한 주행속도의 변화에 따른 통행시간절감효과(VOT)인데, 이는 빠른 도로 지향의 평가체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안전성 제고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개량사업의 경우 이러한 주행속도의 변화가 크지 않아 현재의 평가체계로는 사업의 당위성을 확보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우리가 ‘안전성ʼ이 바른 도로의 중요한 가치라고 전제한다면 평가체계가 이러한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그 개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즉 도로가 가지고 있고, 지향해야 할 다양한 가치의 효과와 도로사업의 합목적성 등을 평가하는 ‘효과성ʼ 중심의 평가체계가 바른 도로 시대에 부합하는 평가체계가 아닐까 싶다.
 
 
◈ 바른 도로 만들기
 
사실 바른 도로가 지향하는 가치는 어찌보면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혹시 우리가 속도에 집중하느라 자칫 소홀했거나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던 점은 없는지 반성하는 것부터가 바른 도로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 또한 이런 바른 도로에 대한 논의가 ‘이제 더 이상 빠른 도로는 필요 없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전개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러한 논의는 빠른 도로의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존과 다른 도로, 새로운 도로를 위한 도로정책을 고민해야 할 현 시점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속도’보다는 그 ‘방향’에 있다는 관점에서 바른 도로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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